시청 앞 차량돌진 가해자의 미심쩍었던 점
차량 돌진 가해자의 입원
이 사건의 이상한 점은 가해자는 입원 후 보험사 직원조차 만나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다. 갈비뼈가 골절되었다는 핑계를 대고 있는데, 사고 후 그의 몸은 정상이었고, 아파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몸이 아프다면 더욱 보험사 직원을 만나야 하지 않는가 싶다.
또 이것은 마치 배현진을 습격한 중학생이 입원한 것과 비슷한 모양새를 띄는 것 같다.
68세였던 운전자 차O수는 1955년생으로 안산의 경원여객 소속의 기사이며 경원여객은 안산 전체를 독점하고 있는 버스 회사이다. 그리고 안산시는 리튬 화재가 일어난 화성시와 경계를 마주하고 있다. 또한 그는 전에 트레일러 운전 기사였고, 화물연대 소속이었다고 한다.
가해자의 부인은 "나도 죽을 뻔 했다."(한겨레 보도)면서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사고 직후 그녀의 태도 또한 아주 뻔뻔했고, "사람이 사망했다는 이야기는 뉴스를 보고서야 알았다"고 하기도 했다. 블랙박스에는 별다른 말이 없고 "어? 어?" 하는 말만 기록됐다고 한다.
누리꾼들은 "사람이 차에 깔리기도 했다는데 아무리 경황이 없어도 저게 인지가 안 될 수준이라는 건 말이 안 된다", "사고 나서 차 외관부터 확인하는 게 정상이냐?" , "CCTV만 봐도 이건 즉사겠다 하는 수준인데 몰랐다고?" 등의 댓글을 달았다.(머니투데이 2024/7/2)
일반적인 급발진 사고조차도 사망자는 2~3명 이하
신문의 과거 급발진 기사를 검색해보면 의외로 사망자가 없는 사고가 많다. 부상자만 7~8명 되는 사고들이 많고, 사망자가 나온다 해도 1~2명이다. 이렇게 9명이나 보행자가 죽은 사건은 없다. 운전자들이 최대한 핸들을 틀어 건물에다가 박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가해자는 보행자를 계속 고의로 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사망자가 9명이면 달리면서 계속 사람을 치였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이 차량은 인도를 평행하게 주행했다. 건물로 박지 않고 계속 달렸다는 이야기다. 아래 두번째에 매일경제에서 공개한 영상에 실제로 평행 주행한 영상이 있다.

동영상 서비스가 종료되어 해당 콘텐츠를 재생할 수 없습니다.
소위 자동차 명장은 왜 등장해 가해자를 두둔했나?
박병일이라는 자동차 정비 명장이 CBS, 한겨레 인터뷰로 '급발진 가능성 70%다'며 사실상 가해자를 두둔했다고 한다. 그런데 박병일은 제9호 자동차 정비 명장이라는 사람으로, 전국 기능경기대회 입상 선수들을 모아 실기 평가를 통해 선발되는 자동차 정비 명장 제도가 갑자기 서류 심사로 바뀌면서 명장이 된 사람이라 한다. 자동차 명장 제도는 1990년에 1호 명장이 배출되었고, 박병일이 서류심사만으로 통과된 때는 김대중 정권이었다. (2002)
[* 박병일은 중학교 중퇴의 학력인데, 이상하게도 새마을 운동 때문에 가세가 기울어서 공부를 못했다고 주장했다. (나무위키) ]
김대중 정권에서 명장이 된 박병일이, 좌파 매체인 CBS/한겨레 인터뷰를 통해서, 9명을 치인 가해자를 사실상 두둔 했다는 점, 그리고 가해자는 안산에서 버스기사를 하고 있었다는 점은 이 사건이 고의 사고가 아니냐는 간접적인 의심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치열하게 뽑았다는 자동차 명장 제도에 대한 글(박병일 명장에 대한 비판 글, 에프엠 코리아)
https://www.fmkorea.com/3812204276, https://archive.is/zV7gX
안산시와 화성시는 인접
리튬 화재 사건이 난 화성시와 안산시는 서로 인접해 있다. 7/5일(금) 화성시 잉크 공장에서 또다른 화재 사건이 발생하였다. 즉 이것은 지속된 방화일 수 있고, 리튬 공장 화재가 전기적 요인이 아닐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조선족들이 버스기사로 일하는 안산
아래 오마이뉴스 기사를 보면 안산에서 버스기사로 조선족들이 일하는 걸 알 수 있다. 시내버스 기사는 외국인노동자를 채용할 만한 직군은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안산에서는 조선족 버스기사가 일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나무위키를 보면, 경원여객은 입사자의 대다수가 무경력자라고 한다.
1952년생인 채성범씨가 한국에 온 건 20년 전이다. 처음 10년간은 건설현장에서 일했다. 건물 외벽에 대리석 붙이는 일이었다. 공사장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을 고비를 넘긴 뒤 일을 그만뒀다. 그 후 경기도 안산과 시흥 지역을 다니는 시내버스 기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10년 무사고"라고 했다.
"한국 와서는 노가다부터 했어요. 나는 그래도 한국말이 돼서 수월했지요. 내가 중국 헤이룽장(흑룡강)성 가목사 출신인데, 어렸을 때 조선학교를 다녔거든요. 부모님이 그래야 한다고 해서. 소수민족이어도 지켜야 한다고. 말이 통하니까 일 잘 했죠. 근데 딱 10년 하니 죽을 뻔 하더라고요. (중략) 그날로 관두고 버스 일 했어요."
[ [아리셀 희생자 이야기②] 아버지 채성범씨의 눈물 "남자 상사 괴롭힘 피해 아리셀 갔는데..." (오마이뉴스 2024.07.05) ]
